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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여기

자기돌봄, 타라브랙

by 조이~* 2024. 12. 30.

 

살아있는 한 우리에게 고통은 모습을 달리할 뿐 끝없이 계속된다. 그때마다 우리가 할 일은 스스로를 보살피는 것이다.

 

자기 돌봄은 잠시도 생각이 끊어지지 않는 내 마음이 엉뚱한 곳으로 달아나 나를 괴롭히지 않도록 하는 것에서 시작한다. 나를 괴롭게 하는 생각의 쳇바퀴를 멈추고(멈춤), 순간순간 깨어 있으면서 내 마음을 관찰하고(깨어있기, 마음 챙김), 진짜 ‘나’를 인식하여(통찰), 마침내 나를 사랑하고 온 세상을 껴안기(포용, 완전한 깨달음)에 이르는 과정이다.

 

가슴과 마음은 어떻게 다른가? 깨어있기는 마음챙김mindfulness. 가슴챙김 heartfulness과 상호의존적 관계에 놓아있다.마음mind은 어떤 현상에 대해 머리로써 판단하고 일이키는 나의 반응이며,가슴 heart은 있는 그대로 느끼고 바라보는 순수한 '나' 다. 즉, 진짜 나는 가슴에 있다. 그 가슴을 닫아둔 채 내 경험과 판단이 지어낸 마음을 좇아가기 때문에 우리 삶은 계속 불안하고 갈등하고 불행한 것이다.....가슴 속 진짜 나는 알면 이리저리 쏠려 다니는 마음을 다룰 수 있다. 

 

취약함을감추기 위한 자기만의 우주복
핵심적인 괴로움을 느끼지 않기 위해 다양한 전략으로 자신을 무장시킨다. 자신의 취약함을 감추기 위한 은폐다.
그냥 느끼기에는 너무나 고통스러운 제대로 살지 못한 삶, 엉켜버린 삶, 상처와 같은 것을 은폐하는 것이다. 이것은 마치 우주인이 우주 공간에서 안전을 위해 입은 우주복과 같다. 다시 말해 우리가 스스로를 두려움으로부터 방어하기 위해 다양한 전략과 정신적 구조 및 과정을 형성한다는 의미다.
우리 모두는 자기만의 위장 전략, 자기만의 우주복, 자기만의 가면을 마련해두고 있다. 어떤 이는 커다란 성취를 통해 자신을 증명하려 한다. 또 ‘눈에 띄지 않음’이라는 망토를 뒤집어쓰고 스스로를 가려버린다. 자신의 경험을 속이거나 과장하거나 왜곡하기도 한다. 
그 가운데 우리가 사용하는 가장 일반적인 ‘우주복’ 전략, 다시 말해 우리를 부족함의 느낌에 계속해서 가둬놓는 가장 기본적인 전략은 바로 ‘판단’이다. 우리는 다른 사람을 비난하고 못마땅하게 생각하지만, 사실 우리는 자기 자신과 더 사이좋게 지내지 못하고 있다. 이것 역시 우주복 전략 가운데 하나다. 우리는 자신을 바꾸려고 한다. 더 나은 사람이 되려고 한다. 지금 상태로 ‘괜찮지 않다.’는 무력감을 있는 그대로 맛보지 않기 위해 그로부터 달아나려 한다. 무가치함이라는 미몽 상태에 빠진 우리는 다양한 은폐 전략을 마련한다. 그리고 자신을 그것과 동일시해버린다. 그 우주복이 곧 ‘내가 누구인가’를 말해준다고 믿기 때문이다

 

 

우리는 부정적인 것에 끌리는 유전자를 가졌다.인간의 뇌 신경계는 잠시도 가만히 있지 않고 주의를 살피는 신경증적인 시스템이다. 항상 문제점을 찾아내고 그 문제를 해결하려고 기를 쓴다.  인간의 뇌 신경계는 잘 된 일보다 잘못된 일에 더 잘 각인되도록 만들어져 있다. 우리 몸의 교감신경을 설명해주는 싸움-도망 반응 fight or flight reaction이 그 예다. ...우리 몸은 본능적으로 부정적인것에 더 반응한다고 할 수 있다. 고통은 찍찍이처럼 들러붙지만 즐거움은 테플론처럼 붙지 않는다.

 

커다란 곤경 

'이것만 있다면 행복할 수 있다'는 식의 조건화된 삶에 매여 우리 본성을 잃어버린 채 단지 우리가 갖는 생각과 느낌에 빠져 스스로를 본래 자기보다 더 협소한 무엇으로 느끼는 것.

 

향수병

우리의 진짜 질병은 고통과 괴로움이 아니라 집을 떠나 겪는 향수병이다. 우리의 집은 본성이다. 그 집은 내면에 있다. 자신이 몸에서, 가슴에서, 그리고 인간관계에서 온전히 '집'에 있지 못하다고 느끼는 데서 우리는 괴로움을 느낀다.

 

우주복 자아

'집'을 떠난 우리는 괴로움에 대처하는 자신만의 전략을 세운다. 우리 자신을 방어하고 보호하기 위한 여러 가지 방법이 우리 안에 있는 황금을 잊어버리게 만들 수도 있다. 우리 가면속의 '나'를 모른 채 가면을 '나'라고 믿으며 살아갈 수 있다.

 

잠시 멈춤

우리는 과거의 일에 괴로워하고 일어나지 않는 일들에 대해 두려워하며 몸과 마음을 괴롭힌다. 지금의 감각으로 돌아오기 위해서는 잠시 멈출 수도 있음을 인지해야 한다.

 

깨어있기의 두 가지 요소

  • 지금 여기로 돌아오는 것 = 사띠 sati = 기억한다. 순간순간 '지금 여기 있음을 기억한다'
  • 지금 여기에 머무는 것. 배를 한 곳에 머물도록 하는 닻과 같은 역할로의 호흡법

 

멈춰서, 현재에 집중하며, 진정한 나를 발견하는 것이 ‘명상’이다

자기돌봄 연습1...호흡을 통한 멈춤 명상

먼저 멈춤, 정지에 대한 느낌이 어떤 것인지 떠올려본다. 멈춤은 하나의 빈 공간이다. 그 빈 공간으로 나를 데려가 보라. 바로 현존으로의 초대다. 이제 호흡에 의식적으로 주의를 기울인다. 숨을 들이쉬고 내쉬면서 자각이라는 수레바퀴의 중심을 느껴보라. 중간중간 심호흡을 크게 한다. 생생한 호흡 경험은 지금 여기를 자각하는 데 도움이 된다. 숨을 깊게 들이쉰 다음 모든 것을 내려놓는다는 자세로 천천히 숨을 내쉰다.
호흡이 자연스럽게 흐르면, 공기가 몸속으로 들어오는 감각을 느껴본다. 숨의 감각이 가장 확실하게 느껴지는 곳은 코끝과 콧구멍, 가슴이다. 숨을 들이쉬고 내쉴 때마다 가슴이 불러오고 꺼지는 움직임을 느끼면서 편안하게 이완한다.
자, 이제 ‘지금 여기’라고 하는 현존의 감각을 느껴본다. 이것은 당신이 지금 여기에 있음을 아는 것이다. 호흡을 의식의 전경에 두고 의식의 배경에 있는 것들을 느껴보라. 방 안의 소리나 신체의 다른 감각을 알아차릴 수도 있다. 아니면 기분이나 감정을 알아차릴 수도 있다. 무엇이라도 그것을 다만 관찰하겠다고 생각하라.
모든 것을 받아들이겠다는 자각으로 주위에서 일어났다 사라지는 소리를 관찰한다. 소리에 귀를 맡기되 가까이서 들리는 소리를 알아차려 보라. 소리의 시작과 끝을 느껴보라. 소리와 소리 사이의 빈 공간도 관찰해보라. 다음에는 먼 곳에서 들리는 소리를 느껴보라. 당신이 감지할 수 있는 가장 멀리서 들려오는 소리에 귀를 열어라. 이제 열린 마음으로 자각 속으로 편안하게 들어가 보라. 당신이 인식하는 모든 것들, 예컨대 형상과 소리, 맛과 감각, 기분 등이 일어나고 사라지는 과정을 열린 자각으로 느껴보라.
다시 호흡을 의식하며 날숨에 주의를 두어라. 당신의 몸과 마음 전체가 날숨과 함께 빈 공간 속으로 녹아 들어가는 것처럼 느껴보라. 당신의 자각이 무한한 공간, 완전히 열려 있고 경계가 없는 공간과 하나가 된다고 느껴보라. 숨을 들이쉴 때 열림 속에 단순히 머물러보라.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귀 기울이면서 깨어있으라.
이제 들숨과 날숨이 부드럽게 흐르도록 한다. 호흡을 자신의 친한 친구라고 생각하며, 당신을 자신의 현존과 다시 연결시켜주는 본거지라고 생각한다. 호흡을 다시 안정시키는 과정에서 당신은 호흡이 아닌 다른 것들을 경험할 수 있다. 지나가는 자동차와 바람, 새의 소리가 의식의 배경에서 들릴 수도 있다. 따뜻함이나 차가움을 느낄 수도 있다. 의식의 배경에 무엇이 있든 그것을 다만 그대로 내버려두어라. 마음이 그것을 따라 좇아가지 않게 하라. 그리고 계속해서 호흡에 머문다.

 

 

마음의 필터, 판단을 멈춰라

살아있음은 과거도 미래도 아닌, 바로 지금 여기에 존재하는 것을 의미한다.

 

나쁜 감정을 씻어주는 RAIN 수행

  • Recognize 인식
  • Allow 허용
  • Investigate 조사 / Intimacy 친밀한 주의
  • Non-identification 동일시하는 것에서 벗어나기

 

바다는 파도를 일으키지만 파도를 바다라고 여기지 않는다. '나'라는 온전한 존재를 '바다'라고 볼 때 시시각각 일어나는 크고 작은 감정의 파도는 '나'가 아니다. 파도와 '나'를 동일시하지 않고 그 파도를 인식할 때 '나'는 고요한 바다로 돌아올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살지 못한 삶

명상은 현실 도피가 아니라 오히려 현실에 머물도록 한다. 지금 있는 그대로의 실재를 살게 해주는 것이다. 실재를 경험할 수 있는 것은 오직 생각이 만들어낸 가상현실을 벗어나 지금 이순간에만 가능하다. 실재를 제대로 살지 않고 어떤 이유로 피하고 외면하고 도망가는 경우 우리의 내면에는 깊은 상처가 생긴다. 상처는 우리가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 몸 안 어딘가에 쌓인다. 치유는 이 상처를 건드리고 어루만지는 과정이다. 상처가 두렵고 부끄러워서 혹은 끔찍해서 묻어둔 것을 꺼내 보며 '살지 못한 삶'을 다시 사는 것이다.....'살지 못한 삶'은 우리가 그 삶을 다시 제대로 살아낼 때까지 계속해서 우리에게 스스로의 존재를 알릴 것이다. 그 신호를 무시하는 것은 곧 우리의 온전함에서 멀어지는 것과 같다. 우리 내면의 황금을 보지 못하고 끝없이 진흙을 덧바르는 것이다.